Essay
Thu Aug 06 2026 00:00:00 GMT+0000 (Coordinated Universal Time)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what do i really want?)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돈
성공
명예
사랑
지위
....
누가 이것들을 원하지 않는가?
"내가 원하는 건 정말 나의 것일까?"
꽤 오랜 시간 나는 48킬로그램이 되고 싶어했다.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48이라는 숫자,
이 출처 모를(사실은 출처가 분명한 '외부'로부터의 입력) 숫자가 내 안에 콕 박혀
나의 모든 행동, 생각, 시간, 에너지들을 조종했다.
48킬로그램이 되기 위해 나는 음식을 조절했고,
48킬로그램이 되기 위해 다이어트 방법들을 검색했으며,
48킬로그램이 되기 위해 나를 그렇게 만들어 줄 것 같은 모든 상품들을 사들이고,
48킬로그램이 되기 위해 나의 시간들 — 축적되어 내 삶이라고 불리는 것 — 을 보냈다.
그때는 그 숫자에 다다르지 못해서 불행한 것 같았고, 그 숫자에 다다르기만 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문득,
이토록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내가
사실은 그 욕망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정말 내가 원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회가 "이걸 원해야 해"라고 가르친 걸 내 욕망인 줄 믿고 따라간 걸까?
세상은 늘 나에게 입력값을 주었다. 숫자로, 대학 레이블로, 회사 타이틀로, 관계의 상태로.
몇 살까지는 이것이 필요해,
그리고 그다음에는 저것을 위해 달려,
그리고 그 임무를 완수한 다음에는 그다음 과제를 향해 질주해.
입력값뿐만 아니라 주변에 페이스메이커들도 존재한다. 입력받은 대로 출력하기 위해 달리는 대중들.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이 나의 진정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의 모든 행동, 생각, 시간, 관심, 의도, 에너지들을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곳에 쓰고 있을까?
내가 아닌 나의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입력값과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는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걸까?
외부적 욕망과 내면의 진리, 그 미묘한 결의 차이
내가 되고 싶은 직업,
갖고 싶은 모습,
살고 싶은 집과 도시,
원하는 관계의 형태조차도
어쩌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이런 모습이 사랑받는다" "삶은 이러한 것이다"라고 정신적으로, 감각적으로, 에너지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보고, 듣고 자라며, 그 데이터(입력값)를 토대로 자신의 삶을 출력하려고 노력한다.
성공이란 무엇인지,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이미 정해져 있는 도식 위에서
우리는 '나의 욕망'을 조용히 위장한 채 살아간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 원하는 삶의 모습을 생각하기 전에 이런저런 '조건'에 맞는 욕망을 설정해버리는 것이다.
나의 욕망은 결핍에서 온 것인가, 존재의 표현인가?
욕망의 뿌리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결핍에서 오는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의 표현으로서의 욕망이다.
결핍에서 오는 욕망은 내가 결핍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망이다.
"내가 부족하니까, 저걸 가져야 해."
"이걸 가지면, 저기에 도달하면, 비로소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이 욕망은 항상 나를 부족하며 더 채워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not enough)
예를 들어, 경제적인 안정감이 결여된 채로 살아온 사람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돈을 쫓고, 직업적 성취를 목표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안정감을 쫓는 게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핍으로부터 근원한 욕망의 추구는
그 결핍을 더 느끼게 되는 상태 및 현실로 경험을 이끌기 쉽다: law of assumption)
반면, 존재의 표현으로서의 욕망은 나 자신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이것은 "이걸 하면 나답고,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
"이것이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이다"라는 직관에서 비롯된다.
존재의 표현으로서의 욕망은 쫓기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내가 지금 여기 있어야 할 곳에 해야 할 것을 하며 존재함을 아는 삶이다.
이런 욕망은 결핍과 부족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
넘치는 에너지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출력값이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그 차이를 구분하는 건데?
욕망은 목소리가 크다.
귓가에 대고 광광대며 외친다. 나는 저게 필요해, 나는 이게 있어야 해, 나는 그렇게 되어야 해! 하며
욕망의 데시벨만큼 긴장과 불안, 기다림과 초조도 함께한다.
반면, 끌림은 조용하고 은근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나를 부드럽게 이끌며,
그저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흐름이다.
어디를 가고 싶고,
무엇을 만들고 싶고,
어떤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그것이 나를 더 '살게' 만드는 감각인지 몸이 먼저 안다.
단순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끌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강제로 해야 한다고 느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즐기고, 나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강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바다로 나아가게 되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것(원한다고 믿는 것)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에 이끌려 가는 것이다.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한 질문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규범을 배우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받아왔으며
그것에 이끌려 생각하고 행동해왔다.
그렇다면 외부가 정의하는 성공과 내면이 부르는 '진짜 나'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내려야 했던 나 자신이
지금부터 진짜 원하는 것이 무언지 알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이 여정은 외부를 향해 나가기보다, 내면으로 깊이 다가가는 일이다.
다음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지금 내가 원하는 이건, 정말 내 마음에서 시작된 걸까?"
"이걸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부족한 사람이 되는가?"
"내가 이걸 할 때, 나는 더 살아있게 느껴지는가?"
"이 끌림이 계속 나를 부르고 있었던가?"
"이 욕망이 나를 확장시키는가, 아니면 움츠러들게 하는가?"
이 질문들은 명확한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나를 더 나에게 가까워지게 한다.
그 가까워짐 속에서 우리는 언젠가 말하지 않아도 아는 방향을 발견하게 되고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what do i really want?)'라는 질문에 스스로의 삶이 답이 된다.
욕망은 나를 발견하는 통로
마지막으로 욕망을 무조건 억누르거나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그 욕망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 안에 숨겨진 진짜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내가 48kg가 되고 싶었던 건,
이상적인 미를 가져야 선택받을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무엇에 선택을 받는가? 이성에게 선택받는다.
왜 이성에게 선택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좋은 이성을 만나서 사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랑받고 안정된 관계를 가져야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라는 믿음체계를 가지고 있는 개인에게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이다.
(나의 예시에 공감이 안 가는 분들은 부동산, 주식, 권력, 지위… 등등 본인이 욕망하는 것과 믿음체계를 대입해보시길)
'48kg가 이상적인 미'라는 아이디어(개념, perception)는 어디서 왔는가? 이것은 진실인가?
'이상적인 미를 가져야 선택받는다' '이상적인 미를 가져야 사랑받을 수 있다'라는 아이디어(개념, perception)는 어디서 왔는가? 이것은 진실인가?
'이성에게 선택받는다' '선택받아야 한다' '나는 선택당해야 하는 객체다'라는 아이디어(개념, perception)는 어디서 왔는가? 이것은 진실인가?
'좋은 이성을 만나야 한다' '여자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좋은 이성을 만나서 안정된 관계를 가져야 행복한 삶'이라는 아이디어(개념, perception)는 어디서 왔는가? 이것은 진실인가?
'사랑받아야 한다' '사랑은 내가 어떤 조건을 갖추었을 때만 주어지는 것이다' '나는 사랑을 받아야 하는 객체다' '사랑은 외부에서 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라는 아이디어(개념, perception)는 어디서 왔는가? 이것은 진실인가?
등등…. 개념과 개념 사이, 통념과 통념 사이 존재하는 수많은 결절들과 틈새들,
그것을 발견하고 외부에서 주어진 것, 밑도 끝도 없는 믿음체계를 무너뜨리는 건 개인의 사유와 질문이며, 의식과 지각이다.
그리고 그 사유와 질문의 길에서 우리는 점차적으로,
'내가 정말 원하는 것'들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무언가를 이룬다는 결과가 아니라,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과정이다.
사실 내 근원적인 욕망은 몸무게가 몇 킬로인지에 상관없이
조건부가 아닌 무조건적으로 사랑받고 싶음이며,
그 사랑은 외부로부터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닌, 내가 내 자신에게 먼저 줄 수 있는 무조건적인 수용과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더 깊은 층위에서 내가 사랑 그 자체임을 알게 될 때
단순히 '무언가를 갖고 싶은 나'를 넘어서,
나는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가' '무엇을 살아내고자 하는가'로 삶이 전환된다.
그리고 욕망의 밑에 뭐가 있는지 들여다보는 자기 인식의 여정에서
더 깊이 존재하고자 하는 본성의 흐름을 따라 내면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나는 진짜로 원하는 삶과 함께 흘러 바다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