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시리즈 · EP.8
2026-08-24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가끔 하던 일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은, 내가 정말 원하던 삶인가?"
처음에는 질문이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대답할 것도 없다는 듯이.
그러나 그 물음 안에 오래 머물러 있다 보면, 나는 이상한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내가 의식적으로 선택해서 살아온 시간보다,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버린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는 것.
나는 살아온 것이 아니라, 살아진 것에 가까웠다.
달라지지 않은 하나
내가 발리에서 살기로 한 것은 분명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여기서는 다르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정말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라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고, 공기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었다.
야자수가 흔들리고, 바다는 파랬고, 거리에서는 영어와 인도네시아어가 섞여 들렸다.
매일이 여행 같았다.
분명 내가 오래 꿈꾸던 풍경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나는 여전히 같은 것에 상처받았고,
같은 것을 두려워했고,
같은 방식으로 사랑했고,
같은 방식으로 미래를 걱정했다.
그 순간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현실은 내가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계속 같은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건 아닐까?'
그 질문은 내가 알고 있던 현실에 처음으로 금을 냈다.
내가 바꾸고 싶었던 것은, 정말 창밖의 풍경이었을까?
다른 얼굴, 같은 대본
관계에서 그것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에 나는 늘 다짐했다.
"이번엔 다르게 하겠다. 더 이상 의존적인 관계는 하지 않겠다."
그리고 정말로 다른 사람이었다. 다른 얼굴, 다른 언어, 다른 방식.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말을 꺼내기 전에 이 말이 그를 불편하게 할지부터 계산하고 있었고,
사랑받기 위해 나를 조금씩 접고 있었으며,
필요 이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그때 현실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했는데, 왜 똑같은 장면이 또 나오는 거지?"
그 순간 삶에 작은 금이 간다.
도망쳤는데도 따라온 그림자, 무대를 바꿨는데도 반복되는 이야기.
그리고 나는 알게 된다.
얼굴과 무대가 달라졌을 뿐, 내 안의 오래된 믿음이 여전히 같은 대본을 돌리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결국 버려진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나를 줄여야 한다."
그 대본은 내가 쓴 줄도 몰랐던 대본이었고,
나는 그것을 아주 성실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 반복은 사랑에만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 회사는 나를 인정하지 않아. 더 나은 곳으로 가야지."
그래서 직장을 옮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곳에서도 똑같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상사가 다르고 동료가 다른데, 느끼는 감정만은 늘 같다.
문제는 회사가 아니었다. "나는 늘 평가절하된다"는 오래된 문장이 새 무대에서도 같은 장면을 불러온 것이다.
돈도 마찬가지다.
수입이 늘어나도, 통장에 숫자가 쌓여도, 어떤 사람은 "부족하다"는 감각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의 삶은 계속 쪼들리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풍요는 금액이 아니라 감각이기 때문이다.
무대는 얼마든지 바뀐다. 나라도, 직업도, 사람도.
바뀌지 않는 것은 그 무대 위에서 내가 계속 읽고 있는 문장이다.
균열은 오류가 아니라 초대다
첫 번째 질문에서 우리는 존재의 균열을 이야기했다.
내가 나라고 믿었던 껍질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되는 순간에 대해서.
이번에는 현실이 균열한다.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같은 감정이 되돌아오고, 바꿨는데도 바뀌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불운이라고 부른다. 왜 나만 이러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것은 삶이 고장 난 것이 아니다.
현실의 균열은 내 무의식을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은 나를 벌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내가 오랫동안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더 이상 못 본 척할 수 없을 만큼 크게.
그래서 균열은 오류가 아니라 초대다.
그것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네 현실이 비추고 있는 오래된 믿음은 무엇이니?"
"그 믿음을 계속 가지고 갈래?"
나는 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하루의 일정표를 묻는 말이 아니다.
내가 아침에 어떤 마음으로 눈을 뜨는지,
누구의 표정을 살피며 하루를 보내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면서 그 두려움을 피하려 무엇을 반복하는지.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삶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사람이 나를 떠나고, 상황이 나를 몰아세운다고.
그러나 반복되는 장면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은 언젠가 이상한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장면들이 전부 나를 지나갔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장면에 한 사람만이 빠짐없이 등장했다는 것.
그러므로 이 질문은 결국 다른 질문으로 바뀐다.
나는 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가.